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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國의 앞날을 생각하며.....제19신
이름 : 金永昭   작성일 : 19/07/16   조회수 : 1199

*필히 일독을 권합니다.

 

석학의 고뇌를 나누며. . .

서강대 최진석 철학교수가 글을

광주일보에 게재하였는데 정말 훌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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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교수 Profile

1959, 전남 함평군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서강대학교 졸업

북경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졸업(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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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1)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다.

폭력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집단, 국가(國家)의 최종목표는 강병(强兵)’ 그래야 국민 생명(生命)과 재산(財産)보호 가능.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원수이지 민족(民族)의 지도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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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즉 국가의 명칭을 100년이나 사용하고도 새삼스럽게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매우 복잡한 일이다. 아니 내게만 갑자기 복잡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성(知性)계나 정치계(政治界)를 둘러볼 때, 나만 혼자서 심사가 복잡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쳤는지 스스로 의심이 된다. 그렇더라도 나를 복잡하게 하는 이 질문을 그냥 넘기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국가(國家)를 국가의 단계(段階)에서 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단 미쳤을지도 모를 사람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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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의 세계가 가장 넓게 확장된 공적 영역은 국가(國家)이다. 한 개인은 자신의 사고나 가치 혹은 생활의 영역을 자신의 주관적인 뜻대로 5대양 6대주나 우주까지 확장할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제약을 공유하면서 보호를 받고 권리를 주장하는 공적인 영역으로는 국가가 가장 크다.

자기가 속한 국가를 벗어나서도 최소한의 보호나 권리를 향유하려면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국가 간의 협의를 거쳐 허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또 허용되는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단위는 국가이다. 보호와 허용은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른다. 이 규칙은 누구나 한 국가 안에서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공적 영역이다.

다시 말해, 공적(公的)인 체계(體系)를 구성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북돋우고 견제하는 삶의 장치로는 아직까지 국가보다 더 큰 것이 개발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앞으로도 상당 기간) 개인에게 가장 큰 공적 공간으로 국가를 넘어선 것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는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이다.

4)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배타성(排他性)이다.

배타성은 배타적 동일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동일성은 대내적으로 적용되고, 배타성은 대외적으로 적용된다. 배타성을 발휘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폭력이다. 그래서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집단이라고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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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에서 폭력(暴力)은 관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暴力)을 임의대로 사용하면 국가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진 모든 폭력성을 다 거두어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국민은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되고,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가 대외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때는 군대가 나서고, 대내적으로는 경찰이 나선다. 군대와 경찰로 한 국가의 폭력은 관리되고, 내외적으로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는 것이다. 국가가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임을 감안할 때, 결국 최종적인 일은 전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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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렇다면, 국가(國家)는 전쟁(戰爭)을 하는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軍隊)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자부심(自負心)과 역량(力量)은 최종적으로 군대(軍隊)로 표현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된다.

대통령(大統領)을 규정하는 어휘(語彙) 가운데 대통령과 가장 일치하는 것이 바로 군통수권(軍統帥權)자이다.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규정할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은 군통수권자라는 뜻이다.

74조에서는 따로 대통령을 군통수권자로 명문화해놓고 있다. 군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고 또 강화도 할 수 있다.(헌법 제73) 따라서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부국강병을 이루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국가 단위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문중이나 시민단체나 동아리나 정치집단 등에서는 부국강병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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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국가(國家)에게는 부국강병(富國强兵)만이 유일한 길이다. 사실 부국강병에서도 부국강병을 위하는 것인 만큼, 국가에게는 강병이 최종 목적지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生命)과 재산(財産)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병(强兵)이 빠진 부국(富國)은 체력은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이 허망(虛妄)하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보면, 정신승리법으로 겨우 버티는 아큐(Q)가 된다. 우리는 이미 아큐(Q)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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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통령이 현충일(顯忠日)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하여 많은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도 말했듯이 현충원은 살아있는 애국(愛國)의 현장(現場)”인데, ‘애국’(愛國)이라고 할 때의 ’()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고도 했는데, 애국으로 통합되어야 할 보수와 진보는 중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다. 배타적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할 때, 말로는 애국(愛國)이라고 하면서 느낌은 민족(民族)’을 가졌을지 모른다. 민족적 의미에서 기려야 한다면, 민족적으로 기리면 된다. ‘애국의 현장은 대한민국만을 중심에 놓고 배타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국가는 원래 이런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樹立)에 기여하고, 6·25 전쟁 중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파괴(破壞)를 위해 적극적(積極的)인 활동을 한 사람을 애국(愛國)’의 한 전형으로 제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직 논리적(論理的)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민족(民族)과 국가(國家)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논리를 좌충우돌 끼워 맞추려 할 것이다.

8) 남한(南韓)이나 북한(北韓)이나 권력을 배타적으로 응집하여 완전한 독립의 상태에서 자력으로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해방 자체를 우리 힘으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라도 근본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도와서 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누가 더 자주적이었는가 하는 논쟁은 정치적인 우격다짐일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근대국가(近代國家)를 세워본 경험도 없이 독립(獨立)을 상실한 우리는 일본에 저항(抵抗)하고 독립의지(獨立意志)를 키우기 위해서 민족(民族)’이라는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민족(民族)은 근대국가 안에서 국가를 이루는 구성 중심이 되지만, 굳이 구분해서 말한다면 국가가 민족을 리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가가 민족(民族)개념을 리드해서 국민 국가를 이룬 프랑스와 달리, 독일(獨逸)은 여러 요인 때문에 민족(民族) 개념으로 국가를 리드하려다가 나치즘에 빠지는 우를 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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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의 민족관은 아직 과거의 독일 쪽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우리는 국가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삶의 뿌리에서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를 가졌기 때문에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다룰 실력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보다 민족이 더 생생한 상태다.

민족(民族)은 상상(想像)의 공동체(共同體)이다. 언어(言語)나 문화(文化)나 풍습(風習)을 공유한다는 믿음으로 구성되는 정서적(情緖的) 공동체이다. 법률(法律)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족(民族)에 빠지면 감정적(感情的)이고 정서적(情緖的)이 된다.

국가(國家)는 감성과 정서를 배제한 법률(法律)과 이성(理性)으로 관리된다. 민족(民族)은 따뜻하지만, 국가(國家)는 차가울 수도 있다. 민족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기대가 허용될 수도 있지만, 국가(國家)는 철저히 이성적(理性的)이고 사실적 효과에만 기댄다. 민족(民族)에 빠지면 호소(呼訴)하려들고, 국가관(國家觀)이 투철하면 힘을 길러 판을 조정하려 한다.

을 믿지 않고 설득(說得)과 호소(呼訴)와 간절한 눈빛과 따뜻한 태도를 앞세워서 일을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아직 국가(國家)’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상상(想像)의 공동체(共同體)인 민족(民族)을 앞세우면 이런 태도들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國家)의 일은 국가적(國家的) 단계에 맞는 태도로만 성사된다. 대통령(大統領)은 대한민국의 원수이지, 민족(民族)의 지도자(指導者)가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나라의 모든 일이 복잡(複雜)해지고 해결이 난망해진다. 모든 것이 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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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외국(外國)의 귀빈이 방문하면 군인들로 이뤄진 의장대(儀仗隊)를 사열하곤 한다. 의장대의 사열(査閱)을 베푸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따뜻하고 친근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국(自國)의 군대(軍隊)가 얼마나 군기(軍紀)가 잡혀 있으며, 얼마나 강한지를 과시(誇示)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국의 폭력(暴力)성이 얼마나 잘 정련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이다.

국군(國軍)의 날도 마찬가지이다. 대내적으로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국가의 폭력성이 얼마나 잘 훈련되어 있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이 잘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강하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군의 날은 무력(武力) 과시(誇示)의 날이지, ()을 돋우고 위로(慰勞)를 나누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따로 하면 된다. 유엔참전용사의 희생(犧牲)과 헌신(獻身)에 경의(敬意)를 표하기 위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하는 날이 아니다. 국군의 날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날이 아니다. 그런 날은 따로 있다.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날을 따로 잡아 해야 한다. 군사퍼레이드도 없이 야밤에 가수들 불러 쇼로 국군의 날을 보내는 일이 처음으로 벌어졌다는 것은 이제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단계를 벗어나 국가(國家)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방치(放置)의 단계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憂慮)를 금할 수 없다. 국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과연 상관있는 것은 무엇인가. 군대와 대통령의 마음속에 국가보다 더 상관있는 것이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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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덴만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항한 해군 청해부대의 최영함입항 환영 행사 도중 사고로 군인 한 명이 사망(死亡)하고 네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大統領)은 국방장관(國防長官)을 대동하고 바로 달려와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빈소(殯所)에라도 와야 한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조화(弔花)를 보내고 직접 조문하지 않은 것은 군통수권(軍統帥權)자로서의 사명감(使命感)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해 수호의 날에 대통령이 연속 참석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무엇이고, 대통령은 어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民間)사고의 희생자보다 군() 사망자들이 대접을 덜 받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들이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일어났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눈치를 보느라 그리되었다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골목에서야 배려하고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면, 무엇인가 얻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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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러나 국가는 절대 그렇지 않다. 국가가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못 얻고 치욕(恥辱)만 남긴다. 골목과 국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골목길의 평화는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고, 망신을 당하고도 그냥 모른 체하고 넘어가면 얻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의 평화(平和)는 싸울 의지(意志)를 더 분명히 하고, 당당한 호전(好戰)성을 거침없이 과시(誇示)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한 걸음도 진척(進陟)이 없는데, () 대비(對備)태세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도 국가를 국가의 높이로 경영하고자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대에는 언제나 목적한 일이 다 풀리고 난 후, 마지막 단계에서나 겨우 조금 손을 댈 수 있다. 우리는 비핵화 진행과정에서 가장 나중에 손을 대야 할 군대(軍隊)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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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국가(國家)를 국가의 높이에서 경영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國家)와 민족(民族) 사이에서 대통령이 중심(中心)을 잡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민족(民族)의 시각으로는 국가(國家)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다. 게다가 우리는 민족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國家)들에 둘러싸여 있다. 국가(國家)들과는 다 등을 돌리고, 민족(民族)이라고 상상(想像)하는 북한(北韓)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中國)에만 굽실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Q가 되어 풀리지 않은 현실을 풀린 것으로 정신승리하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심지어 북한(北韓)과 중국(中國)도 민족적 처신을 하고 있지 않다. 철저히 국가적(國家的) 처신(處身)을 하고 있다. 우리만 그것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만 환상(幻想)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제 부터라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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