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었던 옛터전을 새로 이루매 풍기는 먼지라도 향기로워라 http://kg63.or.kr/


경기고 63회 문집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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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극무대 이야기_양영일_최종.docx

나의 외손녀, Kaitlyn 恩 瑞 Lau_김영남_최종.docx

이름 : 김승헌   작성일 : 19/06/06   조회수 : 675

63회 문집 발간 격문                     

애초에 책을 내는 게 취미인 류철호가 문제였다. 공돌이 취미 치고는요상하지만, 돈 써가며 낸 책을 거저 주는 것을 즐기니, 말리지도못한다. (수고를 생각하여 일별하지만, 큰 감동을 받지는못한다.) 그런 그의 막무가내 의지로 화룡회라는 소모임에서 2015년에 “지난 10년- 화룡회문집”이라는 제목의 책을 하나 만들었다. 편집인으로 출판을주관한 나는, 류철호와도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는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심 친구들이 개별적으로 자서전을 내는 것이 이런저런이유로 마땅하지 않으니, 이런 기회로 지난 날을 돌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자서전이란 대개 위인으로 불리는 분들이나 출세한 분들이 출판하여, 타인에게는귀감이 되고, 본인들에게는 인생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보통의 경우일 것이다. 그런 통념에서 보아,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자서전을 낼 자격이 될것이나, 쑥스럽다든지, 돈이 든다든지, 내가 감히 그런 자격이 되는가라는 겸허한 마음, 기타 사유로 자서전이라는것을 쓴다는 마음을 내기부터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러기에 여럿이서 자기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게끔 멍석을깔아놓으면, 조금 편안하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고, 치명적인에피소드나 의견 또는 주장 하나 정도를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이 조상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되고, 자서전 발간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였다.

그렇게 생긴 류철호를 63동기회장을 시키자, 필연적으로 문집발간을 사업계획으로 제안하니, 동일한 취지로 63회 전체가 참여하는 문집을 발간하면 어떨까 한다. 좀 더 나아가서, 극소수이지만 망한 분들의 이야기도 담았으면 한다. 빨치산을 이해하려면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어야 하듯이, 세상 일이란 story로만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비주류라는section에 넣어, 문재인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이야기는 주류의 관점으로 보면 타산지석이 되겠고, 본인들은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으니,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동기생들끼리의 조그만 좌우합작 또한 보기 좋을 것이다.

62회가 발간한 문집을 커닝하여 보니, “지난날 이야기”, “요즈음 이야기”, “삶에 대한 생각”, “작고한 동기 추모”, “동문과의 대담”, “졸업 50주년소감” 그리고 “졸업 50주년기념행사”를 7개 장으로 엮고, 부인들의 글도 실었다. 역시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되어있어 많은분들의 참여가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견으로 “동기생칭찬하기”, “비주류의 항변” 등의 section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주제 또는 키워드는 편집하는이들이 내용에 따라 분류할 작정이니, 쓰는 분들은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마시길 바란다.

위에 언급한 화룡회 문집에 담긴 글 3개를 첨부하니 참고하시고, 열렬한 성원과 많은 기고 그리고 출간 책자제목에 응모하시기 바랍니다.

 

  1. 성낙원_나의 미국유학생활

  2. 양영일_나의 연극이야기

  3. 김영남_나의 외손녀, Kaitlyn 恩 瑞 Lau

출판계획 개요

  1. 예상 총 페이지수: 500 페이지

  2. 인쇄방식: 오프셋

  3. 예산: 1,500만원

    원고와 책자 제목 응모 요령

  1. 내용과 매수 제한: 내용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고, 일인당 응모원고 매수는 편의상 A4지 10매로 제한하나, 예외도 허용합니다.

  2. 원고 수집책: 김승헌 (010-7229-4511)

  3. 원고 전송 이메일: hunskim49@naver.com

  4. 1차 마감일: 2019년 9월 30일

  5. 시상: 63동기회 임원회의 결정에 따라, 우수한 글과 발간책자 공모제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시상합니다.

    대상: 50만원

    우수상 2편:각 10만원

    책자 제목 공모 당선자: 10만원

 

나의 미국유학 생활

성 낙 원

70년대 초기의 유학은 대부분 미국으로 가는 게 대세였고, 그 당시 정부가 주도하는 중화학공업기술 선진화에 따라 이공계가 대부분이었다.나도 공과대학 입학 때는 별 생각이 없다가, 4학년이 되어 주위 친구들의 유학 간다는 얘기에흥미와 희망을 갖게 되어 유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학 가려니 준비가 안되 있어, 학교성적, 영어, 학비등 문제가 있었는데, 성적은 GRE(미국 대학원 자격시험)로 학비는 대학원에 입학하면 연구조교로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이때 아버님이 좋게 생각하여 주셔서 쉽게 결심이 됐든 것 같다. 1년여를바쁘게 수학준비, 영어학원, 컴퓨터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였고, 여러 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그러던 중 다행이 Texas A&M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Texas 대학의외국학생등록금이 한 학기에 $200. - 로 타 학교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었다.

74년 8월초 미국 LA행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에서 이석진, 이문희, 이범순(?)등 63회가여러 명 있었던 것 같고 그 중 이석진은 미리 연락이 되어 있어서, 같이 Texas A&M 대학에서 아파트도 같이 쓰게 되었다. 9월학기가 시작되고 첫 학기에 4과목을(영어, 수학, 컴퓨터, 열역학) 신청하였는데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는데, 전공인 열역학은전공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고 영어강의도 어려워 처음 시험에 최하 점을 받아 황당했었는데, 다행이 옆자리에있던 착한 대만친구의 시험과 공부에 대한 요령을 도움 받아 결국 학기말에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었다. 그후 석사논문 지도교수도 정하고 석사과정을 진행하면서 서울에 있던 여자친구를 배우자로 초청 학교교회에서 미국인목사님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유학생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석사를 마치고는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는데 한 학기가 지난 1월 어느 날 같이 지내던 친구가 MIT에서 장학금을 받아 8월에 박사과정으로 간다는 얘기에 자극 받아 나도 갑자기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하여 5월에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때 학비가한 학기에 $1,500. -이었던 것 같고 이것과 생활비등을 아버님이 보내주셔서 해결이 되었다. 그래서 8월에, 에어컨도안 되는 고물 차에 이사용 짐칸을 빌려 연결하여 가난한 유학생 살림을 싣고 아이스박스의 얼음으로 더위를 식혀가며 1살된 딸을 데리고 나흘간 운전해서 미시간 대학이 있는 Ann Arbor에도착하였다. 다행이 그때 학교에 있던 정성진(서울대 산업공학과교수)이 도와줘서 쉽게 빨리 정착할 수 있었다.

미국 학교는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은 대개 비슷하지만 내용과 방법에서는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미시간 대학 기계공학부는 박사과정이 입학보다는 졸업이 어려운 학교인데, 박사과정에진학하면 1년동안 예비연구를 하여 연구능력을 지도교수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학업능력에서는 전공과목 중 4과목을 선정하여 Qualifying인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1년내에 통과하여야 하는규정으로 되어 있었다. 시험이 10월과 2월에 두 번 있어, 9월에 입학한 나는 결국 반년만인 2월에 통과하여야 하는 경우였다. 시험은 하루에 한 과목씩 4일간 보는데, 시험담당교수가 출제한 문제를 1시간 혼자 준비한 후, 교수와 1대1 구두시험으로 2시간동안 질문과 대답을 통한, 시험교수의 주관적 평가로 그 자리에서 당락이 결정되는데 이중 한과목이라도 불합격이면 재시험기회 없이 학교를떠나는 제도로 되어있었다. 원서를 제출할 때 알았던 사항이 긴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보니 실제 시험에 실패하여떠난 학생들이 상당수 있고, 학교 내 Q시험 분위기는 긴장이보통이 아니었다. 이젠 잘해서 통과하는 수밖에 없고 해서, 열심히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시험범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문제가 날지도 모르고, 매일 밤 1~2시까지 공부를 하는데, Texas 에서 했던 공부하고는 달리 공부할 내용은 많고 시간은 모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공부가 무리였는지 12월인가 갑자기 열이 나고 기침이나기 시작하여 병원에 2주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지도교수가입원얘기를 알고는 좀 쉬는 게 좋겠다고, 학부에 사정하여 10월로시험을 연기할 수 있게 하여주셨다. 약 한달 쉬고 나니 몸이 회복되고 그 후 강의도 들으면서 좀 더시험준비를 할 수 있어서 10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마지막시험과목을 마치고 나오는데, 시험담당교수가 축하한다며 건 냈던 악수할 때의 감격은 지금도 흥분될 만큼생생하게 남아있다.

시험이 끝나고는, 지도교수의 주선으로 GM 자동차의 실험장치를 빌릴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당시 비교적 새로운내용의 엔진관련 연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을 할 즈음 미국에서는 불경기가 시작되어 외국인은취업이 어려웠던 반면 우리나라는 수출주도 산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해외박사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귀국하여한국기계연구소에서 자동차 부품 설계 및 개발연구를 하게 됐고, 그 후 현대정공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강의를 하게 되었다. 성균관 대학에서는 유학시절 절실히 경험했던 공학의 기초원리에 대한 중요성과 그원리를 이용하여 문제를 분석 해결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강의와 학생들 논문지도에 많이 강조 했던 것 같다.

이제 40년전 얘기를 쓰면서 여러 생각이 나는데, 부모님 덕분에 경기중학교부터 시작하여 미국유학도 가게 됐고, 귀국할때 공항에서 기뻐서 눈물을 보이셨던 벌써 돌아가신 아버님께 좋은 일을 해드렸구나 보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외롭고,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학생활에서, 같이 있어서 즐거웠던 정문수(법대)를포함한 여러 선후배들도 생각나고, 지금은 연락이 끊긴 너무 고맙고 멋있었던 지도교수와 사모님도 보고싶어진다.

작년 정년을 하고 이제는 좋은 친구들과, 이웃들과 건강히 즐겁게 지내는데, 할 수 있다면 유학시절의 기억인 긴장과, 노력과 그런 보람들을 손주와손녀들에게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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