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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주)창비 초판> 을 읽고...
이름 : 김승권(kimsk@korea.ac.kr)   작성일 : 10/12/20   조회수 : 876

바려라 바리데기. 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바리’다. 샤먼의 무당 조상, ‘바리 할미’ 의 자손을 의미하며 무당은 “고통 받은 고통의 치유사”를 뜻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데기’는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는 접미사. 저자는 민중문학, 현장 민중문화운동,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을 통해 경험한 '감동과 절망'의 북한체제의 엄연한 현실을 체험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직접 본 베를린 장벽의 붕괴, 뉴욕 방랑 후 투옥되어 5년을 보내기까지 다섯 번의 사상적 편력 후 뒤늦게 세계의 시민임을 밝혔다. ‘바리데기’는 세계체제 전환기의 작가로 새롭게 변신한 황석영의 ‘세계적 자아실현’을 위한 실험적 소설이다.


주인공 바리는 청진 태생으로 딸만 내리 일곱인 무산시 부위원장의 칠공주 중 막내로서 버려졌다 다시 살려진 딸이다. 바리의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전쟁 영웅이었다. 바리 자신은 고조할머니로부터 무당의 피를 이어 받아서, 넋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기도 하는 신통력을 가진 딸이다. 소련과 동구라파 공산주의 체제 붕괴로 촉발된 새로운 세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 대 기근을 맞고, 그로 인한 고난의 행군시기에 삼촌의 남한 탈북으로 아버지가 숙청되고, 식구가 뿔뿔이 흩어진 뒤 두만강 건너 움집으로 도피해 발 안마사로 연명하다가, 밀항선을 타고 영국까지 가서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의 아내가 된 기구한 탈북자 여인네의 이야기 이다.


사는 것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삶의 현장에서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억누르고,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서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어디나 마찬가지-. 분단과 대립으로 고통 받는 밑바닥 불법체류 세계인의 삶을 주인공, 바리의 '자아' 와의 연결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우리네 마을과 골목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그다드나 이스탄불이나 런던, 파리에서도 벌어진다. 세상 어디를 가도 싸움과 굶주림과 질병과 무서운 권력이 있고, 맘 편히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국경을 넘고, 세계적으로 힘센 부자들은 그 부를 지키기 위해서 국경을 설치하고, 여권과 비자발급을 제한하여 방어한다. 망명생활 동안 세계의 자유인이고 싶어 하지만 이동의 자유를 속박당하고 자신을 옥죄었던 비자와 여권 문제로부터 얻어진 인식이 통렬하다. 


가족관계는 인종을 넘어서는 공통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인간관계 설정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분쟁과 대립을 넘어서야 할 세계의 흐름 속에서 21세기의 생명수를 찾기 위한 출발점에 당연히 가정이 있고, 결혼이 있다. 인연이 결혼의 단초를 제공하고, 다시 결혼으로 이룬 가족관계가 인연을 만들어 내므로 결혼이 결국 사람들 간 관계설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무슬림 알리와 조선 탈북여성, 바리와의 결혼을 통해서 보여준다. 따라서 바리가 하는 국제결혼은 “종교와 민족과 빈부의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다원적 조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식으로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결혼은 엄숙함을 넘는 즐거운 축제이며, 새롭게 정립되는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고 격려하는 놀이의 장이 된다. 그에 반해서 대립과 갈등의 해소를 위해 인간이 벌이는 전쟁은 관계의 단절을 통한 고통을 부르고, “늘 반쪽의 승리만을 가져오므로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인간 세상에 빚어낸 지옥”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가르고 찢어 놓은 것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주인공 바리에게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가므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제시한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말로,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 지라도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슬림 압둘 할아버지를 통해서 독자에게 얘기하고, 세상을 구할 생명수를 찾는 일은 자신의 구원을 얻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을 구해낼 생명수에 대한 문제는 이미 이천여 년 전에 예수를 통해서 해결책이 제시된 오래된 철학적 주제로서 아직도 실천이 잘 안 되고 있어서, 거대 담론의 뿌리로 남아 인간을 고뇌하게 만들고 있다. 민족적 가치를 우선시 하는 민중문학 작가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황석영이란 소설가가 최근 세계 주유를 통해 터득한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탈북의 현실을 재조명하고,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극복해야 할 냉혹한 현실의 문제를 작가적 푸른 상상력과 주인공 바리의 무속적 환상의 메타포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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